휘파람불며 2009. 10. 8. 04:29

세계의 미래, 한국의 미래

출처 : 인간개발연구원 창립 33주년 기념포럼 강연(2008년)

 

  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3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36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2월 14일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2층 그랜드볼룸에서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 현오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이영희 KT 미래기술연구소 소장, 전상인 한국미래학회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포럼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한국미래학회가 출범한 해가 1968년이니까 올해로 꼭 40돌이 된다. 나의 대학 은사였던 이한빈 전 경제부총리(인간개발연구원 회장 역임)가 학회 창립을 주도했다. 미래학회가 출범하던 해에 유학을 떠났던 나는 1971년 교수가 되어 귀국했는데, 내 연구실이 미래학회 사무국이 됐다. 1970년대 중반 과학기술처의 후원을 받아 <2000년의 한국>이라는 보고서와 <미래를 묻는다>는 제목의 회지도 발간하면서 미래 탐색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개척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당시의 미래 예측 수준은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틀리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 동안 많은 성장과 변화가 있었다. 마침 과학기술부 산하에 뇌과학연구소가 설립되고 우주공학 관련 심의관도 기용된다고 들었다.”

인간개발연구원 창립 33주년 기념포럼의 사회를 맡은 김광웅 <시사IN> 대표이사(서울대 명예교수)는 ‘미래 예측의 추억’을 언급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발제자는 이미 지난해 조찬강연에서 ‘미래 예측의 현재’를 소개했던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 그녀는 미래 예측이 왜 우리의 미래 전략 수립의 화두가 돼야 하는지를 외국 사례를 통해 강조했다.

 

  “한국 국회에 산업자원위, 보건복지위 등의 상임위가 있는 것처럼 핀란드 의회에도 다양한 상임위가 있다. 그런데 핀란드 의회에는 한국 의회에 없는 상임위 하나가 있다. ‘미래위원회’라는 상임위가 바로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래위원회 위원장만이 핀란드 총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새롭게 집권하는 정부는 법률에 따라 반드시 15년 이후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대안과 국가 성장의 동력을 찾아내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그럴 의사나 능력이 없는 정치 세력은 처음부터 정권을 잡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제롬 글랜 세계미래학회 회장이 한국에도 대통령 직속의 ‘미래전략청’(혹은 미래전략처) 설립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핀란드 의회에 설치된 미래위원회

 

  그렇다면 미래 예측은 왜 중요한가? 박 대표는 ‘경고’와 ‘대안’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예컨대 전문가의 88%는 2030년이 되면 중국이 세계를 움직이는 최대의 권력자로 등극하고 미국, 인도, 러시아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그 예측은 우리에게 한미동맹이라는 외교전략을 변함없이 금과옥조로 여길 것인가를 심각하게 묻고 있는 셈이다.

 

   “영국에서 약 150년 전에 나온 미래 보고서가 있다. 1867년 당시 런던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사용된 교통수단은 말이 끄는 마차였다. 그런데 도시 인구가 급증하자 마차 수요가 늘어났고, 덩달아 말의 개체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말이 배설한 똥을 그대로 놓아두면 100년이 흐른 뒤에 런던 거리는 6피트 높이의 말똥 속으로 빠져버릴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됐다. 만약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곳에는 항상 대안이 따르기 마련이다. 실제로 런던 당국은 대안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그 고민과 준비 끝에 ‘똥을 싸지 않는 교통수단’이 출현했다. 마침내 자동차가 등장한 것이다. 설사 불길한 예측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곧 ‘노력해서 빨리 바꾸자’는 결의였던 셈이다.”

 

   문제는 세계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음은 물론이다. 산업시대까지만 해도 출산을 통해 태어난 아이는 ‘재산’이었지만 ‘비용’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다시 ‘인구=국력’의 시대가 도래했다. 2020년 인구 2억의 유럽은 19억의 중국을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칼 세이건이라는 사람이 1977년 한 장의 도표로 만든 ‘우주 달력’(Cosmic Calender)이 있다.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주요 사건을 12장의 달력에 적어 넣은 것인데, 스티븐 호킹이 찾아낸 우주 탄생의 비밀 ‘빅뱅’이 1월에 표시돼 있다. 이 달력에 따르면, 태양, 화성, 목성은 8월, 단세포는 9월, 다세포는 11월에 생겨났다.

 

   그렇다면 유인원의 전신인 원숭이가 지구에 태어난 것은 언제일까? 세이건은 12월 31일 오전 10시 15분이라고 봤다. 유인원, 즉 인간이 직립해 두 발로 걷기 시작한 것은 오후 9시 24분이었다. 그리고 오후 11시 59분 45초에 문자가 탄생했고, 11시 59분 59초에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를 발견했다. 결국 우주 달력은 세계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 대표는 이밖에도 다양한 미래 예측의 목록들을 소개했다. “온난화, 물 부족, 국제범죄 등의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 정부’가 생길 것이다”, “국가의 개념은 사라지고 유럽연합, 나프타, 아세안 등 8개의 경제 블록이 그것을 대체할 것이다”, “개인의 파워가 현재 16.8%에서 2030년 83.2%로 늘어날 것이다”, “급격한 출산율 저하로 한국은 2305년, 일본은 3300년에 지구상에서 소멸할 것이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예측현안 방치하면 시한폭탄 돌변

 

  한편 이날 포럼에는 토론자 3명도 참석해 의견을 피력했다. 현오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이영희 KT 미래기술연구소 소장, 전상인 한국미래학회 회장(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이 바로 그들이다. 토론자 3명의 발표 요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예측에 따른 대안 마련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면 현재 우리 사회의 현안인 고령화․저출산의 경우에도 10여년 전부터 충분히 예고됐던 문제였지만 알면서도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도 선진국처럼 미래 예측을 국가적 차원의 아젠다로 삼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경제 환경의 급속한 변화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불확실성, 글로벌화, 성장 동력의 다양화, 경쟁력 원천의 변화 등을 정확히 읽어내고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세계 경제의 격랑에 휩쓸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미래 예측 정보를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구온난화는 10년 전에는 잠재적 문제였지만 지금은 현재적 문제가 됐다.”(현오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정확한 미래 예측이 국가나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 아마도 이것이 박영숙 대표가 발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IT혁명으로 상징되는 후기정보화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하느냐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앞으로도 세계는 ‘풍요 속의 디지털 혁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 IT와 무관할 것 같았던 자동차마저 제작의 40%를 IT에 의존하게 될 것이며, 10년 이내에 무인 자동차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컨버전스, 커넥티드 콘텐츠, 인간친화적인 인터페이스, 집단지성의 커뮤니티화 등이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이 자유를 누리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원초적 동력이 될 것이다.”(이영희 KT 미래기술연구소 소장)

 

   “한국 사회에는 뻔히 예측되는 현상인데도 방치하다가 그 문제가 시한폭탄처럼 커져서 눈앞에 다가와 버리는 경우가 많다. 약 300개에 이르는 전국 대학 중 무려 3분의 1이 신입생 미달 사태를 맞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대통령 후보들이 선거를 앞두고 지역마다 대학 신설을 반복적으로 허락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과, 이것을 정책에 반영한다는 것이 전혀 별개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세대와 교육의 문제도 지적하고 싶다. 미래 예측은 사실 다음 세대의 운명과 직결된 문제이다. 그러나 미래 걱정은 주로 노인과 장년 세대의 몫이 됐고, 정작 젊은 세대는 야망, 패기, 비전을 갖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래 예측의 주체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전상인 한국미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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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대표의 이력서

▲ 경북대 불어교육학과 졸업▲ 미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육학 석사

▲ 성균관대 사회복지학 박사수료▲ 주한영국대사관 공보관

▲ 주한호주대사관 문화공보실장▲ 미래다문화재단 공동대표

▲ 세계미래회의(World Future Society) 한국대표▲ 연세대 생활과학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