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인(仁)’은 인도주의적 기본 윤리이다.
불타(佛陀 : Buddha)의 ‘자비(慈悲)’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자비 윤리이며, 예수의 ‘사랑’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존중(尊重)의 윤리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다”는 평범함을 알고 있다. 때론 '나'만의 이기(利己)를 쫒고 있지 않는가를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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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어느새 흘러가고 상류에선 새로운 물들이 밀려오고 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도 생각하기에 따라 “가는 것”이 되기도 하고 “오는 것”이 되기도 한다. 강의 상류를 향해 바라보면, 흘러오는 것이지만 하류를 향해 서있노라면, 흘러가는 것이 된다. 물은 지류(支流) 실개천에선 ‘졸졸’ 흐르지만 하류로 갈수록 유유히 흐르기 시작한다. 더 큰 세상인 본류(本流)로 나가면 도도히 흐른다.
창세 이후 40일 동안 지상에 퍼부은 폭우가 물줄기 되어 골짝을 흘렀었다. 혼탁한 인간들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땅 덩어리는 바다 속으로 잠기게 했었다. 가족들이 함께 만든 방주에 탄 노아의 식솔들은 아담(이브) 이후 새로운 인간의 시조가 된 셈이다. ‘과거’는 흘러 갔고 미래는 도래한다고 노아의 후손들이 표현하고 있다.
바람직한 미래가 찾아오기를 누구나 기원한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이므로 ‘인적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래의 크기는 인적 네트워크와 무관 할 수 없으니, 나를 믿어주고 지원해줄 수 있는 그룹이며 새로운 시각과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세력이다.
미래 방정식은 (1 / ± (현재 - 과거)) × 인적 네트워크(NQ : Network Quotient))변수 x 100으로 표시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NQ는 (Y2 - Y)/2로 나타 낼 수 있다. 현재와 과거의 내용은 시간, 부, 명예 등으로 대체 할 수 있으며 24보다 적은 수를 입력하는 것으로 하며 과거와 현재의 크기가 서로 다른 크기로 입력한다.
과거의 크기가 24에 가까우면 분모가 커져 상대적으로 삶의 수준은 떨어 질 수밖에 없음을 내타낸다.
여기서, 과거가 최악이었다면 NQ를 크게 늘리는 방법 뿐 일게다. 앞으로의 시간들을 “미래”라 하였으니 내 차지가 되지 못한 미래는 남의 몫이 될 수도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에서 과거를 수혈(輸血)하는 지혜는 바람직한 미래를 산출한다.
천적의 공격을 받은 도마뱀은 꼬리를 스스로 떼어 낸 채 줄행랑을 치며, 잃어버린 꼬리를 결코 연연하지 않는다. 평온한 곳에서 과거를 치유하며 꼬리를 재생해 낸다.
헤르만 헤세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고 했다. ‘한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 밝은 미래를 향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려면 '디테일의 방정식'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디테일’은 "100에서 1을 빼면 ‘99’가 아니라 ‘0’이다"라고 하였다. 그것은, 1%의 실수가 실패를 부를 수도 있다는 큰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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