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당신이 받고자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랑은 오직 주고자 는 것과 관계가 있다. - 캐더린 헵번
이하 내용의 출처 : ‘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은 뜻은’
공자의 ‘인(仁)’은 인도주의적 기본 윤리이다.
불타(佛陀 : Buddha)의 ‘자비(慈悲)’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자비 윤리이며,
예수의 ‘사랑’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존중(尊重)의 윤리라고 본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다.”는 평범함을 알고 있다. 때론 '나'만의 이기( 利己 )를 쫒고 있지 않나를 되돌아 본다.
21세기 인류는 경제ㆍ사회는 엄청난 과학의 발전 속에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크게 변화를 당하고 있다. 인간 사회는 이처럼 변화에 적응하려는 꾸준한 시련의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어 ‘공생(共生)’의 사랑만이 살 길이라는 외침들을 쏟아내고 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보자.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구경하게 되었다.
마침 지옥은 식사 시간으로 모두 겸상을 하고 있었는데, 팔보다 훨씬 긴 젓가락으로 먹되 한번 떨어뜨린 음식은 다시 집어 먹을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다. 사람들은 제 각기 음식을 집어서 자기 입에다 넣으려 했지만 젓가락이 너무 길어서 전부 떨어뜨리기만 할 뿐 한입도 먹지 못해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그러한 몸부림을 볼 수 없었다. 식사 규칙도, 젓가락 길이도 지옥과 똑 같았으나 여기서는 배불리 먹고 있었다. 왜냐 하면 젓가락으로 집은 음식을 자기 입에 넣으려 하지 않고, 마주 앉은 사람의 입에다 서로 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 것이 진정한 존중의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오래 동안의 기다림이다. 만년설을 이고 선 히말라야의 깊은 산골 마을에 어느 날 낮선 프랑스 처녀의 어느 사랑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다음날부터 마을에 머물면서 날마다 마을 앞 강가에 나가 앉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달이 가고 해가 가고, 몇 십 년이 흘러갔다. 고왔던 그녀의 얼굴엔 어느덧 하나 둘 주름살이 늘어 갔고 까맣던 머리칼도 세월 속에 희어져 갔지만 속절없는 여인의 기다림은 한결 같았다.
그러던 어느 봄날, 이제는 하얗게 할머니가 되어 앉아 있는 그녀 앞으로 상류로부터 무언가 둥둥 떠내려 왔다.
그 것은 한 청년의 시체였다. 바로 여인이 일생을 바쳐 기다리고 기다린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청년은 히말라야 등반을 떠났다가 행방불명이 된 여인의 약혼자였다.
그녀는 어느 날인가 꼭 눈 속에 묻힌 약혼자가 조금씩 녹아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 오리라는 걸 믿고 그 산골 마을 강가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할머니가 되어 버린 그녀는 몇 십 년 전 히말라야로 떠날 때의 청년 모습 그대로인 약혼자를 껴안고 한없이 입을 맞추며 울었다.
평생을 바쳐 마침내 이룩한 사랑의 입마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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